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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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훈

PARK KI HOON

1980~

박기훈

현실과 가상의 유토피아적 포토콜라주

 

거실이 다시 거리에 등장하듯 거리가 거실로 들어간다. 수면과 식사에 정해진 시간이 없으며, 정해진 장소가 없을 때도 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 말하는 이행사회는 여기서 공간적 무정부상태, 사회적 뒤섞임, 무엇보다 비영속성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건물과 활동이 상호 침투한다. (…) 규정이나 각인을 삼간다. 영속을 의도하는 상황은 없는 듯하다. ‘다름 아닌 바로 그것’을 자처하는 형식은 없다.(Walter Benjamin)

 

도시와 자연의 유토피아적 결합

발터 벤야민은 근대화와 자본주의의 영역에서 파편화되고 있는 도시의 이미지를 위와 같이 묘사했다. 근대 도시의 “자유 없는 권력 혹은 권력 없는 자유”의 양자택일적 상황에서 벤야민은 “신화적 사유를 벗어나는 방법의 핵심”으로 “자연적 질료 없이 역사적 범주 없고, 역사적 여과 없이 자연적 질료 없다”는 명제를 개진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박기훈은 현대인이 소란스럽게 영유하는 도시를 다양한 현상, 혹은 가치들을 이항 대립적 시각으로 묘사하고 있다. “안과 밖, 따뜻함과 차가움, 자연과 콘크리트, 낮과 밤, 허(虛)와 실(實), 익숙함과 낯섦, 무와 유….” 그리고 시간과 공간의 중첩 속에서 도시의 풍경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표출한 세월의 묵은 얘기들을 풀어내고 있다. 세상의 모든 비속을 함축하고 있는 오늘날의 도시는 넘쳐나는 문물의 유혹으로 가득 하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작품에서 인간의 삶과 역사, 일상과 욕망의 이미지와 중첩되거나 굴절될 때 묘한 긴장의 마력을 풍기게 된다.

 

“본인은 포토콜라주 기법을 활용하여 도시의 이미지를 회화적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직접 찍은 사진과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건물, 자동차, 풍경 등의 이미지를 재구성하여 마치 존재하는 듯한, 가상의 도시의 일면을 창조해낸다. 마치 한 때 유행했던 ‘Simcity'라는 게임처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가상공간을 연출한다. 비록 가상공간이지만 이웃의 친근한 마을로 다가와 자연과 도시가 공존하는 따뜻한 공간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그 공간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은 사진 밖에서 직시하고 있는 관객이 되는 것이다.”(작가노트)

 

라깡(Lacan)은 이 단계들의 행위를 현존하는 어떤 것에 주체를 고정시키는 행위의 시선, 곧 응시(gaze)로써 설명한 바 있다. 응시는 곧 바라보기만 하던 것에서 보여짐을 아는 순간 그래서 실재라고 믿었던 대상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함을 깨닫고 다시 욕망의 회로 속으로 빠져 들게 하는 동인이며 기표를 작동시켜 주체를 반복충동으로 몰아넣는 중심의 결여이다. 따라서 박기훈의 작품을 직시하는 관객의 응시 역시 대상을 허구화시키는 욕망의 동인임을 보여준다.

 

역설적 구조의 변증법

 

박기훈의 작품이 제공하는 해석의 실마리는 이미지 자체가 아니라 이미지 밖을 가리킨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화석화되고 고립된 것으로 놓아두질 않는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대하면 우리는 자기가 원하지 않아도 어느새 역사의 탐정이 되어 저작의 재구성에 가담토록 하는 압력이 느껴진다. 그러나 정작 그의 이미지는 이미지외적인 세계를 가리키는 일련의 캡션일 뿐이다. 작가는 자기의 이미지를 해독하는 열쇠인 자연사적 현실의 이미지, 또는 가상적 일상의 이미지를 찾아내라며 우리의 등을 떠민다.

박기훈의 연작에서 우리는‘해부대 위에서의 재봉틀과 우산의 만남'을 이야기하는 로트레아몽(Lautre amont)의 싯귀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초현실주의 회화가 낯익은 물체를 뜻하지 않은 장소에 놓음으로써 꿈속에서 밖에 볼 수 없는 화면을 구성했는데, 이는 심리적 충격뿐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속 깊이 잠재해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일깨우고자하는 일종의 충격요법이었다. 이에 비해 박기훈은 포토콜라주 기법을 이용하여 초현실적인 공간을 연출하면서도 현실이지만 현실이 아닌, 가상이지만 가상이 아닌 아이러니한 도시 공간의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물들의 조합, 즉 아프리카의 초원을 뛰어다니는 동물들과 세련된 도시의 이미지의 조합, 그 곁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는 현대인들의 모습은 새로운 현실로써 다가오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현실은 자연지배라는 인간의 욕망이 다른 종들의 삶의 터전을 잠식해가며 일구어 온 폭력에서 비롯된다. 인간문명의 발전은 이종이 살 곳을 갈취하여 생태계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고, 자연과의 공존을 외치지만 점차 파괴되어가는 환경 속에서 작가는 그들과 공존할 수 있는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지난한 노고의 산물

 

이를 위한 방법적 수단으로 작가는 대상을 명쾌하게 묘사하여 신선하고 시적인 이미지와 매혹적인 환상의 세계를 창조하면서 논리와 상식을 유쾌하게 뒤집음으로서 우리에게 예기치 않은 경험을 상기시킨다. 아울러 작가는 대상을 충실히 통찰함으로서 얻어진 본질을 역설적으로 결합함으로서 존재의 근원을 파헤치고자 하는 철학적 사유와 일상세계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장인적 노고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어찌 보면 무심하고 또 어찌 보면 치열한 각축의 현장을 오롯이 재구성하여 제시함으로써 우리의 인식작용을 코페르니쿠스적으로 전도하고 새로운 회화적 실험을 전개해 나가고자하는 것이다.

박기훈의 회화적 실험은 우선 다채로운 색채의 운용으로 시작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좀 더 다양한 사물들이 화면에 등장하면서 다채로워지고 그 속에서 강한 포인트를 주는 사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화면 밖으로 색이 흘러내리는 효과를 극대화함으로써 전체적으로 회화적인 느낌을 조장하고 있다. 작가는 사물 고유의 색 보다는 사물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색들을 선택하여 자연스럽게 흩뿌려진 마블링물감들이 뒤엉키면서 혼합해가는 과정에서 화면의 조화를 찾아간다. 사물을 보면 공통적으로 떠오는 색(色), 즉 대표색을 찾아 캔버스 위에 중첩하여 바르고 말리기를 반복하여 다양한 색들이 공존하는 판을 만들고 그 위에 이미지를 새겨 넣는 것이다. 이미지의 표현은 조각도로 색면을 깎아내면서 조각도의 깊이와 힘에 따라 색들이 드러나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런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우연의 효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마블링을 할 때 색을 뿌리고 휘젓는 의도적인 행위와 그 속에서 나온 우연의 효과에 의한 의도하지 않은 결과물은 예기치 않은 미적 쾌감을 제공해 준다. 즉 그의 작품 속에서 각각의 색들은 조각도를 쓰는 작가의 힘과 칼날의 날카로움에 의해 화면 밖으로 보여 지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결정되며 이러한 작업 방식으로 인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사물들은 색과 어울리면서 조화로움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그의 작업은 이는 형식 자체가 작품의 내용을 구축한다는, 즉 색채의 실험과 질료의 탐구를 중시하는 모더니즘미술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회화적 본질의 표현에 있어 ‘순수실재는 주관적인 내용, 또는 개념과 병렬적으로 존재한다.’는 오늘날의 회화관과 부합된다는 점이다. 즉, 순수실재와 이상공간을 구체화하기 위한 방법적 수단으로써 작가는 자연의 대상들을 판각이라는 항구적 요소로, 자연의 색채들을 청, 적, 황 등 몇몇의 기초 색채들로 환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연의 색채와 형태에 예속되지 않는 회화적 공간은 작가 자신의 내적 경험에 의해 구체화되고, 이것이 관객들에게 파급되어 그들 역시도 자신의 세계관과 경험에 의거하여 이를 자유롭게 해석하게 된다. 결국 이는 어떤 사실적 표현보다 폭넓은 해석의 여지와 미적 조화를 이룩하며, 보다 큰 공감을 확보하는 동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경모 (미술평론가/미술세계편집장)

 

 

 

 

 


SELECTED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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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共存)-2106, 72.7x90.9cm, 캔버스 위에 채각(彩刻)기법, 2021

박기훈

PARK KI HOON


1980~

박기훈 작가는 인간은 사회 안의 공동체뿐만 아니라,

다른 종과의 공생 관계를 인류 전체에 밝힐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주제로 동물에 대한 관심과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깎아내는 기법으로 신체적 자취를 남기며 동물과 

인간, 세계의 소통과 공존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SELECTED WORKS

ARTIST NOTE  /  작가 노트


My artwork is based on printmaking. I carve on image into the surface of a canvas. The whole blank canvas has been painted with 7-8 different colors and left to dry until it is layered and covered.


After finding the color which comes across one’s mind from looking at the object which means representative color, he makes the board which has a various color by appling the color to be overlapped onto a canvas then drying off repeatedly. And then, he enchases a picture onto the board.

 

As for the expression of a image, he uses the way to be shown colors by the depth and power of a graver when he carves the color side and he may get unintentional effect using this way.

 

When do marbling, sprinkling and stiring colors by intended act, and unexpected ,unintentional results from the act makes us feel aesthetic pleasure.

 

Therefore, whether or not each color is shown out of the picture depends on his depth and sharpness using his graver. And the way of working helps to find harmony of various objects by

well matching with colors.



본인의 작품은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지구에 생존하고 있는 다양한 동물들에 대한 우리 인간의 인식과 태도에 대해 미술로써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진행되었다. 인류가 처음 지구상에 출현한 이후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인간의 생활방식에 따라 변해왔다. 일찍이 인간에게 동물은 생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존재했던 생명이었다. 수렵생활에서 농경과 목축업을 통해 살아온 인간에게 동물은 경제적, 생산적 이유로 없어선 안 될 존재였다. 이러한 동물의 존재는 다양한 모습으로 미술사에 등장해왔는데, 인류 최초의 미술이라고 알려진 선사시대 '라스코(Lascaux)동굴벽화'를 시작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미술의 중요한 소재로 쓰여 왔다. 미술에서 동물은 경제적 수단으로서 뿐만 아니라 토템적 신앙, 종교나 신화의 초월적 상징기호로 표현되었으며, 때로는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이렇듯 미술 속에서 동물은 인간의 변화하는 생각과 요구에 의해 다른 모습으로 등장해 왔다. 현대사회에서 동물에 대한 관심과 인식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제 개나 고양이는 키우거나 가지고 노는 애완(愛玩)이 아닌 인생의 동반자를 뜻하는 반려(伴侶)라는 이름으로 가족의 일부로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존재로 인식되었다. 


반면 동물유기나 학대는 여전히 끊이지 않는 사회의 문젯거리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동물에 대한 현대인들의 모순된 태도를 엿볼 수 있는데, 유행처럼 번진 반려동물에 대한 높은 관심이 결국 매해 10만 마리의 유기동물을 낳고 있다. 한편, 한국은 동물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게 반려동물에만 집중되어 있으며, '동물권(動物權)'이 포괄적으로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지구상에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동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할 때이며, 이는 단순히 동물 사랑에 그치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소비 자본주의 시대에 우리는 동물을 '하나의 생명'이 아닌 '돈의 가치'로서 인식하고 있으며, 식품과 옷, 실험도구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동물을 대량 학살, 소비하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전반적인 환경파괴와 생물다양성의 감소를 통한 생태계 파괴를 낳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인간 자신을 위협하고 있다. 다른 생명체에 대한 사랑은 곧 인간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다. 우리는 동물이라는 하나의 생명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인간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우리 인간은 사회 안의 공동체뿐만 아니라 다른 종과의 공생을 생각하며, 인류 전체를 밝힐 의무가 있다. 본인은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주제로 동물에 대한 관심과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지는 작품에서 나아가 다양한 생명체에 대한 인간 자신의 질문과 성찰을 담고 있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