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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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현

LEE SAE HYUN

1958~

이세현의 예술



이세현 작가는 '붉은 산수' 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작가의 그림은 아찔하다. 너무도 아름다운 산이 솟아있고 들이 펼쳐지며 바다는 일렁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런 풍경은 있을 수 없다고 느꼈다. 그러나 작가는 내게 "나의 풍경은 사실에 기반을 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그것이 작가의 고향 풍경임을 알았다. 작가는 통영 사람이다. 거제도 해변에서 놀면서 자랐고 한려수도의 장관을 바라보며 자랐다. 한산도에서 오백 개가 넘는 크고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 푸른 바다에 떠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경관이 한려수도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비옥한 밭에서는 오곡이 나고 바다에서는 맛 좋은 해산물이 사시사철 나오는 곳이 통영이며 거제도다. 오십 해리를 넘는 한려수도 전체가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통영을 가리켜 그 누가 동양의 나폴리라고 불렀던가? 통영을 가본 이탈리아 친구들은 나폴리가 서양의 통영이라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일 수도 있다고 한다. 또 통영에는 유달리 위대한 예술가가 많이 배출된다.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尹伊桑) 선생님이 통영 사람이다. 우리나라 문학에서 최고봉을 차지하는 분은 박경리(朴景利) 선생님이다. 선생님도 1926년 통영에서 태어났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전혁림(全爀林) 선생님도 1916년 통영에서 태어났다.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예술가와 문인들이 통영에서 나고 자랐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르며 높은 하늘을 가진 곳에서 천재가 많이 난다고 니체가 말했다. 그리스 아테네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아테네는 서양 정신의 원류이자 연원이다. 나는 우리나라 정신의 현대성이, 그리고 혁신성이 통영에서 나왔다고 어김없이 주장한다. 이세현 작가에게 물은 적이 있다. 통영의 산과 물이 너무도 부럽고 예술 정신이 너무 부럽다고 말했다. 작가는 말했다. "통영이나 거제, 한산도 한려수도 전체의 역사는 아마도 조선 선조 때부터 수면 위로 떠올랐을 거야. 지금도 이순신 장군의 전적지가 가장 많잖아? 이순신 장군은 남해안 전체에 실력을 펼치면서 왜적을 소탕했는데 그것이 군인들의 힘만으로 되었을까? 나는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로 임명되면서 전국의 재능 있는 모든 이들을 여기로 불렀다고 생각해."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작가는 유년기를 보낸 고향을 자기 예술의 근간으로 두고 있다는 사실이 이 말에 녹아있는 것이다.


윤이상 선생도 루이제 린저(Ruise Rinser)와의 대담집 『상처입은 용(Der verwundete Drache)』에서 "마을에서 떨어져있는 우리 집 바로 앞에 펼쳐진 논에 대한 기억입니다. 봄이 되어 논에 물을 댈 때면 개구리 천지입니다. 매일 밤 개구리 소리가 정말 시끄러웠는데 그게 내게는 우는 소리가 아니라, 예술적으로 구성된 혼성합창처럼 들렸습니다. 한 마리가 울기 시작하면 다른 소리가 거기에 맞춰 화답하고 세 마리째 가세하면 갑자기 고음, 중음, 저음의 합창이 일제히 시작되며 갑자기 모두 침묵합니다. 간격을 두고는 다시 독창이 시작되고 다른 소리가 거기에 화답하고 그리고 다시 합창이 되지요. 밤이 새도록 말입니다. 낮에는 여자들이 밭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여자들은 오래된 민요를 부르는데 어머니도 같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아름다웠습니다."라고 말한다. 윤이상 선생의 예술의 원형은 바로 통영의 기억 속에서 비롯된 것이다. 개구리 소리가 연출하는 평화로운 분위기와 사랑스럽고 자애로운 어머니의 목소리야말로 선생의 원형을 제공한 커다란 틀이었다.


예술에서 원형(原型)이라는 표현이 있다. 영어로는 아르케타입(archetype)이라고 하는데 이토록 유년기부터 서서히 형성된 감각, 그리고 감수성의 총체적 깊이와 넓이가 바로 원형이자 아르케타입이다. 이세현 작가의 정신적이고 예술적인 원형은 바로 통영의 바다이며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었다. 작가의 어머니도 아주 아름답고 단아하며 목소리가 예뻤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불러낸 어느 재주 있는 선조의 후손일 것이며 어머니의 재능은 푸른 바다에 실려 이세현 작가에 주입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세현 작가를 또 부산 형님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작가는 늘 화끈하고 의리가 있었으며 정이 넘쳤다. 타인을 바라볼 때면 어김없이 따뜻한 시선이 빛났다. 부산 형님들은 속에 있는 생각을 감추질 못해서 늘 곧바로 말이나 행동으로 옮기고 표현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특성이 있다. 이세현 작가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세현 작가의 그림에 있는 원형은 통영과 거제, 한려수도에서 보냈던 어린 날의 행복이었다. 반면 그림에 표현된 뜻은, 혹은 외부에 대한 메시지는 성인이 되어서 느낀 불의에 대한 저항심이었다. 부산 형님 중 한 사람인 이세현 작가는 이것은 아니다 싶으면 도저히 참지를 못했다.


작가는 우리나라 1980년대 대학을 다녔다. 우리나라가 압축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동시에 발생했다. 여기서 그 문제가 무엇인지 말하기 어렵지만, 불의라는 한마디로 그 모두를 함축할 수 있다. 작가는 불의로부터 느낀 분노와 슬픔을 잠시 뒤로 한 채 군대에 갔다. 최전방이었다. 작가는 군인이었던 시절에 야간 감시 임무를 자주 맡았는데, 어느 날 적외선 망원경으로 어둠에 가리워진 전방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너무도 아름다운 풍경이 붉은 빛으로 비춰졌다. 작가에게 그 날의 붉은 풍경은 우리나라의 무거운 역사였으며 마치 '상처입은 용'처럼 위대한 영물이 상처를 입어서 비상하지 못하고 밭에서 움츠러든 것처럼 보였다. 작가는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분명히 용이다. 다만 지금 상처를 입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나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슬프거나 아파도 근거 없이 곧바로 명랑해지는 혈액형 O형을 가진 이 부산 형님은 언젠가 우리나라의 역사와 희망을 그릴 것이라고 다짐한다. "나도 우리나라 역사의 일부분이며 역사가 상처 받았다면 나도 상처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군복무를 마치고 수도권에 있는 어느 예술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이 된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사직했다. 그리고 런던으로 유학 길에 올랐다. 보장된 모든 안정과 미래를 버리고 유학을 간 것은 군복무 시절 스스로의 다짐을 지키려던 의무감에서 싹텄을지도 모른다. 놀랍게도 윤이상 선생님이 부산사범학교 음악교사 자리를 사직하고 독일 유학을 택한 것과 너무도 흡사하다. 여하튼 현대미술의 핵심 지역인 런던에서 포스트모더니티나 예술철학이 무엇인지 영국 학생들과 격론을 펼친 뒤 깊은 회의감에 빠졌다고 한다.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소위 '최초의 길'을 걷는 예술가를 인정한다는 점에 있다. 그것은 혁신이라는 미명 아래 움직인다. 그러나 나는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어떤 예술이 예술가의 삶과 일치하는가 아닌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을 실존적 예술가라고 부른다. 혁신적 예술가는 아이디어가 있을지는 몰라도 자기 삶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세현은 자기 예술을 철저히 자기 삶에서 찾은 것이다. 그렇기에 자기 인생을 돌아본 성찰하면서 찾아낸 솔직하고도 실존적인 예술이다. 이세현의 예술 속에는 일말의 거짓과 가식도 없다. 자기의 유년기, 청년기, 군대시절, 선생님으로서의 책임감을 모두 녹인 그림이다. 더구나 첼시 대학교 수업 시간에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나 자크 라캉을 알지도 모른 채 소화되지 않은 개념으로 거리낌 없이 지껄이는 학생들을 보고 적잖이 실망했다고 한다.


서구 회화의 역사는 두 개의 선로가 있다. 경부선, 호남선처럼 서구 회화에도 선로의 이름이 있다. 하나는 바자리의 역사 선로이며 또 하나는 그린버그의 역사 선로이다. 바자리의 역사선로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에 목적이 있다. 그래서 원근법이 가장 중시된 방법이다. 그린버그는 회화가 무엇인지 철학적으로 아는 것에 목적이 있다. 그래서 가장 중시된 것이 예술철학이다. 이세현 작가는 이 둘 모두 어불성설이라고 여겼다. 원근법으로 바라본 세계는 우리의 시각이 아니다. 우리의 눈과 머리와 몸은 언제나 움직인다. 원근법은 고정된 시점이고 인간의 바라보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17세기 우리 할아버지 겸재 정선이 바라본 시점이 진리에 가깝다고 여겼다. 겸재는 산 속을 유람하고 바라보는 시점을 연속적으로 그렸다. 그러면서 만나는 민초들도 그림에 넣었다. 이세현 작가 역시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 산도 넣고 바다도 넣고 친구와 역사적 인물, 민중을 고루 넣으면서 이 땅에서 벌어진 자연의 파노라마와 역사적 드라마를 화해시켰다.


이세현 작가의 그림은 붉은 회화이다. 가장 고귀한 색채인 붉음이다. 붉음은 생명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상처의 표현한다. 그것은 심장의 고동인 동시에 역사의 대속(代贖)이다. 따라서 이세현의 그림을 바라보자면 다음과 같은 요소를 찾으면서 곱씹어 보어야 한다. 행복했던 통영의 유년기, 그것이 그림에서 아름다운 고향의 산과 바다로 표현된다. 분노로 가득했던 서울의 청년기, 그것이 그림에서 역사적 인물과 사건, 민중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군복무 시절의 성숙기, 그것이 그림에서 붉은 색채로 나타난다. 런던에서 배웠던 예술철학적 완성기, 그것이 그림에서 부유하는 섬과 바다로, 즉 삼원법(三遠法)의 그림 그리기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세현의 그림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네 개의 에피소드를 골고루 모두 알아야 한다.


미술비평, 이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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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현

LEE SAE HYUN


1958~

 

1967 거제도 출생

1989 홍익대학교 학사

2001 홍익대학교 석사

2006 런던, 첼시 칼리지 석사

 

SELECTED WORKS

이세현의 회화작업은 DMZ라고 부르는 비무장지대의 풍경을 구성하고 재조립한다. 지형의 편린들, 땅과 강의 토막 단위들을 재작업하면서

자체적인 논리에 따라 기능하는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

 이세현의 풍경화는 통일과 치유의 이미지라기 보다는 균열과 파열의 이미지가 된다. 모순과 차이의 복잡한 지형도를 그려내면서, 외견상 드러난 이 통일성은 언제 무너질지 모를 것이라며 우리를 위협한다.



이세현의 예술


이세현 작가는 '붉은 산수' 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작가의 그림은 아찔하다. 너무도 아름다운 산이 솟아있고 들이 펼쳐지며 바다는 일렁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런 풍경은 있을 수 없다고 느꼈다. 그러나 작가는 내게 "나의 풍경은 사실에 기반을 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그것이 작가의 고향 풍경임을 알았다. 작가는 통영 사람이다. 거제도 해변에서 놀면서 자랐고 한려수도의 장관을 바라보며 자랐다. 한산도에서 오백 개가 넘는 크고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 푸른 바다에 떠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경관이 한려수도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비옥한 밭에서는 오곡이 나고 바다에서는 맛 좋은 해산물이 사시사철 나오는 곳이 통영이며 거제도다. 오십 해리를 넘는 한려수도 전체가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통영을 가리켜 그 누가 동양의 나폴리라고 불렀던가? 통영을 가본 이탈리아 친구들은 나폴리가 서양의 통영이라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일 수도 있다고 한다. 또 통영에는 유달리 위대한 예술가가 많이 배출된다.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尹伊桑) 선생님이 통영 사람이다. 우리나라 문학에서 최고봉을 차지하는 분은 박경리(朴景利) 선생님이다. 선생님도 1926년 통영에서 태어났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전혁림(全爀林) 선생님도 1916년 통영에서 태어났다.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예술가와 문인들이 통영에서 나고 자랐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르며 높은 하늘을 가진 곳에서 천재가 많이 난다고 니체가 말했다. 그리스 아테네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아테네는 서양 정신의 원류이자 연원이다. 나는 우리나라 정신의 현대성이, 그리고 혁신성이 통영에서 나왔다고 어김없이 주장한다. 이세현 작가에게 물은 적이 있다. 통영의 산과 물이 너무도 부럽고 예술 정신이 너무 부럽다고 말했다. 작가는 말했다. "통영이나 거제, 한산도 한려수도 전체의 역사는 아마도 조선 선조 때부터 수면 위로 떠올랐을 거야. 지금도 이순신 장군의 전적지가 가장 많잖아? 이순신 장군은 남해안 전체에 실력을 펼치면서 왜적을 소탕했는데 그것이 군인들의 힘만으로 되었을까? 나는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로 임명되면서 전국의 재능 있는 모든 이들을 여기로 불렀다고 생각해."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작가는 유년기를 보낸 고향을 자기 예술의 근간으로 두고 있다는 사실이 이 말에 녹아있는 것이다.


윤이상 선생도 루이제 린저(Ruise Rinser)와의 대담집 『상처입은 용(Der verwundete Drache)』에서 "마을에서 떨어져있는 우리 집 바로 앞에 펼쳐진 논에 대한 기억입니다. 봄이 되어 논에 물을 댈 때면 개구리 천지입니다. 매일 밤 개구리 소리가 정말 시끄러웠는데 그게 내게는 우는 소리가 아니라, 예술적으로 구성된 혼성합창처럼 들렸습니다. 한 마리가 울기 시작하면 다른 소리가 거기에 맞춰 화답하고 세 마리째 가세하면 갑자기 고음, 중음, 저음의 합창이 일제히 시작되며 갑자기 모두 침묵합니다. 간격을 두고는 다시 독창이 시작되고 다른 소리가 거기에 화답하고 그리고 다시 합창이 되지요. 밤이 새도록 말입니다. 낮에는 여자들이 밭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여자들은 오래된 민요를 부르는데 어머니도 같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아름다웠습니다."라고 말한다. 윤이상 선생의 예술의 원형은 바로 통영의 기억 속에서 비롯된 것이다. 개구리 소리가 연출하는 평화로운 분위기와 사랑스럽고 자애로운 어머니의 목소리야말로 선생의 원형을 제공한 커다란 틀이었다.


예술에서 원형(原型)이라는 표현이 있다. 영어로는 아르케타입(archetype)이라고 하는데 이토록 유년기부터 서서히 형성된 감각, 그리고 감수성의 총체적 깊이와 넓이가 바로 원형이자 아르케타입이다. 이세현 작가의 정신적이고 예술적인 원형은 바로 통영의 바다이며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었다. 작가의 어머니도 아주 아름답고 단아하며 목소리가 예뻤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불러낸 어느 재주 있는 선조의 후손일 것이며 어머니의 재능은 푸른 바다에 실려 이세현 작가에 주입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세현 작가를 또 부산 형님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작가는 늘 화끈하고 의리가 있었으며 정이 넘쳤다. 타인을 바라볼 때면 어김없이 따뜻한 시선이 빛났다. 부산 형님들은 속에 있는 생각을 감추질 못해서 늘 곧바로 말이나 행동으로 옮기고 표현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특성이 있다. 이세현 작가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세현 작가의 그림에 있는 원형은 통영과 거제, 한려수도에서 보냈던 어린 날의 행복이었다. 반면 그림에 표현된 뜻은, 혹은 외부에 대한 메시지는 성인이 되어서 느낀 불의에 대한 저항심이었다. 부산 형님 중 한 사람인 이세현 작가는 이것은 아니다 싶으면 도저히 참지를 못했다.


작가는 우리나라 1980년대 대학을 다녔다. 우리나라가 압축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동시에 발생했다. 여기서 그 문제가 무엇인지 말하기 어렵지만, 불의라는 한마디로 그 모두를 함축할 수 있다. 작가는 불의로부터 느낀 분노와 슬픔을 잠시 뒤로 한 채 군대에 갔다. 최전방이었다. 작가는 군인이었던 시절에 야간 감시 임무를 자주 맡았는데, 어느 날 적외선 망원경으로 어둠에 가리워진 전방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너무도 아름다운 풍경이 붉은 빛으로 비춰졌다. 작가에게 그 날의 붉은 풍경은 우리나라의 무거운 역사였으며 마치 '상처입은 용'처럼 위대한 영물이 상처를 입어서 비상하지 못하고 밭에서 움츠러든 것처럼 보였다. 작가는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분명히 용이다. 다만 지금 상처를 입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나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슬프거나 아파도 근거 없이 곧바로 명랑해지는 혈액형 O형을 가진 이 부산 형님은 언젠가 우리나라의 역사와 희망을 그릴 것이라고 다짐한다. "나도 우리나라 역사의 일부분이며 역사가 상처 받았다면 나도 상처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군복무를 마치고 수도권에 있는 어느 예술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이 된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사직했다. 그리고 런던으로 유학 길에 올랐다. 보장된 모든 안정과 미래를 버리고 유학을 간 것은 군복무 시절 스스로의 다짐을 지키려던 의무감에서 싹텄을지도 모른다. 놀랍게도 윤이상 선생님이 부산사범학교 음악교사 자리를 사직하고 독일 유학을 택한 것과 너무도 흡사하다. 여하튼 현대미술의 핵심 지역인 런던에서 포스트모더니티나 예술철학이 무엇인지 영국 학생들과 격론을 펼친 뒤 깊은 회의감에 빠졌다고 한다.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소위 '최초의 길'을 걷는 예술가를 인정한다는 점에 있다. 그것은 혁신이라는 미명 아래 움직인다. 그러나 나는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어떤 예술이 예술가의 삶과 일치하는가 아닌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을 실존적 예술가라고 부른다. 혁신적 예술가는 아이디어가 있을지는 몰라도 자기 삶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세현은 자기 예술을 철저히 자기 삶에서 찾은 것이다. 그렇기에 자기 인생을 돌아본 성찰하면서 찾아낸 솔직하고도 실존적인 예술이다. 이세현의 예술 속에는 일말의 거짓과 가식도 없다. 자기의 유년기, 청년기, 군대시절, 선생님으로서의 책임감을 모두 녹인 그림이다. 더구나 첼시 대학교 수업 시간에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나 자크 라캉을 알지도 모른 채 소화되지 않은 개념으로 거리낌 없이 지껄이는 학생들을 보고 적잖이 실망했다고 한다.


서구 회화의 역사는 두 개의 선로가 있다. 경부선, 호남선처럼 서구 회화에도 선로의 이름이 있다. 하나는 바자리의 역사 선로이며 또 하나는 그린버그의 역사 선로이다. 바자리의 역사선로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에 목적이 있다. 그래서 원근법이 가장 중시된 방법이다. 그린버그는 회화가 무엇인지 철학적으로 아는 것에 목적이 있다. 그래서 가장 중시된 것이 예술철학이다. 이세현 작가는 이 둘 모두 어불성설이라고 여겼다. 원근법으로 바라본 세계는 우리의 시각이 아니다. 우리의 눈과 머리와 몸은 언제나 움직인다. 원근법은 고정된 시점이고 인간의 바라보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17세기 우리 할아버지 겸재 정선이 바라본 시점이 진리에 가깝다고 여겼다. 겸재는 산 속을 유람하고 바라보는 시점을 연속적으로 그렸다. 그러면서 만나는 민초들도 그림에 넣었다. 이세현 작가 역시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 산도 넣고 바다도 넣고 친구와 역사적 인물, 민중을 고루 넣으면서 이 땅에서 벌어진 자연의 파노라마와 역사적 드라마를 화해시켰다.


이세현 작가의 그림은 붉은 회화이다. 가장 고귀한 색채인 붉음이다. 붉음은 생명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상처의 표현한다. 그것은 심장의 고동인 동시에 역사의 대속(代贖)이다. 따라서 이세현의 그림을 바라보자면 다음과 같은 요소를 찾으면서 곱씹어 보어야 한다. 행복했던 통영의 유년기, 그것이 그림에서 아름다운 고향의 산과 바다로 표현된다. 분노로 가득했던 서울의 청년기, 그것이 그림에서 역사적 인물과 사건, 민중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군복무 시절의 성숙기, 그것이 그림에서 붉은 색채로 나타난다. 런던에서 배웠던 예술철학적 완성기, 그것이 그림에서 부유하는 섬과 바다로, 즉 삼원법(三遠法)의 그림 그리기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세현의 그림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네 개의 에피소드를 골고루 모두 알아야 한다.


미술비평, 이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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